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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당 3.1절] 일본 법정 항의 / 유관순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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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법정에서의 떳떳한 항의

유관순



나는 한국 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죽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가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들은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도 명분도 없다.

* 유열사의 항변은 시는 아닐지라도 시보다 정제된 언어로 전달된 강렬한 영웅적 문구이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의 학생으로 1919년 서울의 만세시위 참여한 후 휴교령이 내려지자
충남 천안군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옥중에서 만세 항쟁을 하였으며, 1920년 고문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셨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시에 시위 대열이 장터 곳곳을 누비자 병천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이 달려와 총검을 휘두르며 만세 시위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하였으며, 천안 헌병분대원들과 수비대원들이 도착하면서 19명의 사망자와 3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유관순 열사의 부친인 유중권이 “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느냐”고 항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찔려 순국하였고, 이를 보고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달려 들다가 선생의 모친마저도 일본 헌병들에게 학살당하고 말았다.




이에 선생은 숙부인 유중무(柳重武)등과 함께 군중들을 이끌고, 부친의 시신을 둘러메고 병천 헌병주재소로 쇄도하여 항의 시위를 계속하였다.

유중무는 격분하여 주재소에서 두루마기의 끈을 풀어 헌병의 목을 졸라 매려 하였고, 또 제지하는 헌병 보조원에게 “너는 보조원을 몇 십 년이나 하겠느냐. 때려 죽이겠다”고 윽박질렀다. 선생 또한 고야마(小山) 주재소장의 멱살을 쥐고 흔들면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총기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면서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밝혔다.




시위 군중들은 헌병들이 강탈했던 태극기를 도로 빼앗아 휘두르며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도 함께 죽이라”고 소리치며, “구금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하면서 주재소를 습격할 태세를 보였다. 이에 헌병들은 재차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시위 군중들을 해산시킨 뒤, 그 날 저녁 유관순 선생과 유중무, 조인원·조병호 부자 등 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여 천안헌병대로 압송하였다.

선생은 천안헌병대에서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하면서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호통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공주감옥으로 이송될 때에는 군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독립만세를 연이어 고창하여 불굴의 독립의지를 표출하기도 하였다.




특히 공주감옥에서 선생은 공주 영명학교에 다니면서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혀 온 오빠 유관옥(柳寬玉)을 만나게 되었다.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시위로 부모를 잃고, 오빠까지 감옥에서 만나게 된 유관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출처:국가보훈처, 네이버캐스트, 네이버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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